문제 1. <보기>에 나타난 살베르그의 교육관을 파악하고 제시문 [가], [나], [다]를 활용하여 이를 보충 설명하시오. (1000±100자, 60점)

[가] 플라톤의『메논』에서 소크라테스는 ‘문제의 패러독스’를 말했다. 우리는 문제를 내고 그에 답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하지만 ‘문제’라는 걸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자체가 역설적이다. 해법을 전혀 알 수 없는 문제는 애당초 ‘문제’로 인식할 수 없으며 해법을 이미 알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문제’라고 부르는 것은 해법을 어렴풋이 알지만 아직은 완전히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과학은 항상 ‘가설’을 세운 다음 이를 증명한다. 가설을 세워서 이를 근거로 실험을 하여 반증 사례를 발견하면 가설을 바꾼다. 이것이 자연과학, 인문과학을 불문하고 모든 과학적 사고의 기본이다. 이 ‘가설’이 방금 말한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아직은 완전히 알지 못하는 해법’이다. ‘잠정적 진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잠정적 진리가 결정적인 진리인지 아닌지는 좀더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반대로 말하면, 지금은 맞는지 안 맞는지 여부를 말할 수 없지만 시간을 들이면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지에 대한 지성의 개방성, 내가 이대로 나아가면 언젠가는 얻을 수 있는 앎에 대한 분명한 기대가 ‘멘토’, ‘문제’, ‘가설’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다. 추상적인 설명이어서 유감이지만 여기서 키워드는 ‘시간’이다. 지성이란 요컨대 나 자신을 시간의 흐름 속에 놓고 나의 변화를 고려하는 것이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무지’의 정의도 가능하다. 무지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 자신 역시 변화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못하는 사고를 뜻한다.

[나] 기술과 행동은 분리될 수 없다. 분리를 시도하는 순간 끔찍한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말하기는 기술 또는 기술의 퇴적물이 아니라 행동, 즉 실행이다. 행동 뒤에는 목적이 있다. 두 살이건 아흔 두 살이건 우리는 말하고 싶은 게 있고 그걸 말해주고 싶은 대상이 있기 때문에, 말을 하면 무언가 달라진다고 생각하거나 달라지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말한다. 말하기 시작하는 아기는 우리의 귀에 말로 들리는 혹은 우리가 말이라고 생각하는 소리를 내기 훨씬 전부터 자기보다 큰 사람들이 입을 벌려 내는 소리가 그들이 하는 다른 일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예리한 관찰을 통해 배운 것이다. 그들이 말을 하면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아기는 그 일이 무슨 일이며 또 그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정확히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아기는 자기보다 큰 사람들의 언어 집단에 속하기를, 자신도 자기의 목소리를 이용하여 일을 벌이길 원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걷기는 기술이 아니다. 목적이 있는 행동이다. 아기는 자기보다 큰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걷고 싶어 한다. 그들처럼 빠르고 능숙하게. 읽기도 기술이 아니라 행동이다. 아이는 주변에서 글자들을 본다. 아이는 나이 든 사람들이 글자들을 보고, 글자들을 사용하고, 글자들의 의미를 알아채는 모습을 구경한다. 쓰여진 말들은 일이 벌어지게 만든다. 그러면 아이는 어느 날 기회가 허락되면 그 글자들을 읽는 방법과 그 글자들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며, 그렇게 할 수 있고 그러고 말겠다고 다짐한다. 바로 그 순간, 그런 결심과 함께 아이는 읽기 시작한다. 􍾧읽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읽는다.

[다] 가족을 배제한 채 학교와 배움만을 중요시하는 태도는 자칫 아이들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다. 오히려 교사가 아이들이 교실 안으로 가져온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아이들을 존중해 주면 아이들도 쉽고 편하게 이러한 불안감을 다룰 수 있다. 교사가 학생을 존중해 준다는 것은 그 아이가 속해 있는 원래 가족에 대한 존경심을 갖는다는 걸 의미한다. 그 안에는 아이의 가족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운명에 대한 존경심도 포함되어 있다. 교사가 아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상의 배려는 아이의 운명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자기 훈련이 교사에게 요구된다. 무엇보다 교사는 아이가 속해 있는 원래 가족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아이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단지 교사일 뿐이다. 아이들은 평생 자기 운명과의 연관 속에서, 또 원래 가족과의 연관 속에서 살아가게 되어 있다. ‘가족세우기 세션’에서 보듯이 어려운 국면이 전환되는 시점은 바로 아이가 자신의 운명을 인정할 때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이들은 가족적 사랑에 얽힌 채 그 상태에 고착되고 만다. 겉으로는 자기에게 고통을 주는 대상이나 상황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의식적으로) 가족에 대해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상황을 보기 시작하면서 나는 버트 헬링거의 말처럼 ‘모든 운명은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깊은 차원의 관계성을 인식하게 된 뒤로 나는 그동안 내가 교실 안에서 해온 노력이 얼마나 무익한 것이었는지 절감하게 되었다.

문제 2. 제시문 [가], [나], [다]를 활용하여 한국의 국가 주도 가족계획정책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쓰시오. (800±80자, 40점)

[가]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정부는 경제성장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환으로 광범위한 산아제한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초저출산 사회가 도래하자 2004년부터는 출산장려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산아제한운동 시대를 살았던 한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구술한 내용이다.

“사실 좀 마뜩잖았지…. 아이는 그냥 우리 사는 형편에 맞게 낳으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무엇하러 나라에서 이런 것까지 상관하는지 모르겠다고 민망하게 생각했지. 나라가 아이 낳는 일을 어떻게 일일이 간섭할 수 있겠어? 처음에는 그렇게만 생각했으니까 따를 마음이 없었지 뭐. 그런데 나중에 자꾸 그래야 한다고들 하니까, 그리고 우리들 형편도 어렵고 하니까 따라가기 시작한 거지. 당시는 먹고 사는 게 가장 큰 일이었고 ‘한 명만 낳아도 삼천리가 초만원’이라는 표어가 있었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거든…. 그래 그땐 다들 먹고 살기 힘들었지…. 어쨌건 정부가 계속 그렇게 하는 게 나라 발전을 위한 일이라고 하니 다들 그쪽으로 생각을 바꾸는 게 당연했지 뭐. 정부가 다 알아서 하는 거라고 생각했고… 나라가 설마 잘못된 일을 하겠어? 그런데 요즘은 또 많이 낳으라고 하니까 뭐가 뭔지 모르겠어…. 하긴 요샌 젊은 사람들이 애를 낳으려 하지 않으니….”(2007년)

[나] ‘인구학적 이행’이란, 많은 수의 자녀 출산과 많은 수의 유아 사망이 결합된 낮은 인구증가 체제에서 많은 수의 자녀 출산과 적은 수의 유아 사망이 결합된 높은 인구증가 체제로 변화했다가, 다시 더 적은 수의 자녀 출산과 더 적은 수의 유아 사망 체제로 돌아가는 변화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의학의 진보와 개선된 식단이 19세기 유럽의 사망률을 낮추었는데, 그러한 방식이 20세기 후반 마침내 나머지 세계에도 유사한 효과를 낳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출산율이 처음에는 1880년대와 1930년대 사이에 유럽과 북미에서, 그리고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왜 낮아졌는가이다. 두 경우 모두 국경, 산업화와 도시화의 정도, 소득수준, 종교, 이데올로기, 가족시스템 등에 구애받지 않은 채 출생률이 30년 만에 30~40% 정도 급격히 떨어졌다. 제3세계였던 지역 대부분에서도 오늘날 가족의 자녀수는 평균 두세 명을 넘지 않는다.

이 거대한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830년에 이르러 출생률의 심각한 감소를 경험한 첫 번째 나라는 프랑스와 미국이었고 이러한 경험은 다른 나라들보다 몇 세대 앞선 것이었다. 이 두 나라의 공통점은 보통사람들에게 주인의식을 부여해준 민중혁명(popular revolution)이었다. 이들 사회에서 전보다 작은 규모의 가족이 갖는 이점이 분명해지자, 분가(分家)해서 따 로 살게 된 새로운 장소(neo-locality) 덕분에 부부들은 현대적인 피임수단을 사용할 수 있기 전부터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독자적인 결정을 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50년 후 처음으로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시작되면서 대규모 출산통제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바로 이때 문맹률의 광범위한 하락과 가족계획이라는 관념을 대중화시킨 급진적인 사회주의운동과 세속화(탈종교) 운동이 결합되면서 점점 더 자의식적인 근대문화의 일부로서 더 낮은 출생률이 초래되었다. 이것은 밑으로부터의 출산통제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제3세계에서는 이제 간단해진 피임이 위로부터, 즉 국가의 정치적 법령에 의해 선전되거나 강제되는 일이 일반화되었다.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이 극단적인 예였다. 일단 낮은 출산율이 근대화를 수행하려는 정부의 일반적인 목표가 되고나면, 한 사회가 새로운 인구체제로 진입하는 순서는 가족체계에 의해 결정되었다. 동아시아가 선두에 서고 인도 북부와 아프리카가 그 뒤를 이었다. 여기서도 변화를 이끌었던 것은 자연을 관리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즉 지배에 대한 인식이었는데 이것이 애당초부터 관료주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부유했던 라틴아메리카 사회들은 좀더 자발적인 방식으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그 시작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그것이 갖는 의미는 거대하다. 피임이 없었더라면 지구의 인구는 지금보다 약 20억 명이 더 많았을 것이다.

[다] 전근대 국가는 현실 파악 능력이 불완전했다. 백성의 정체성은 물론이고 그들의 재산, 토지 보유, 거주지에 대해서도 별반 아는 게 없었다. 자기의 통치영역과 그 통치영역을 백성들이 어떤 모양새로 점유하고 있는지를 일러주는 상세한 ‘지도’같은 것도, 나라 전체를 한눈에 가늠토록 도와주는 표준적인 척도나 측정법도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전근대 국가의 정책은 대개 조잡했고 실패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서양에선 19세기 중반, 그 외의 지역에선 20세기 초반을 기점으로 자기의 계획을 강제하는 국가의 역량이 급격히 강화되고 확대되었다. 그 결과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걸쳐 국가발전의 여정이 비극적인 여러 에피소드로 점철되었다. 그것은 세 가지 요소가 비극적으로 결합한 결과였다. 그 세 가지 요소란 첫째, 자연 세계와 인간 사회에 행정적 질서를 부여하려는 과도한 열망, 둘째, 그러한 열망에서 비롯된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국가권력의 무제한적 사용, 셋째, 이를 저지할 힘을 상실한 허약한 시민사회이다. 주목할 것은 하이모더니즘(High Modernism)이 첫 번째 요소로 제시된 ‘자연 세계와 인간 사회에 행정적 질서를 부여하려는 과도한 열망’을 그 안에 담고 있었으며 전위적인 엔지니어와 기획자, 기술관료와 고위 행정관, 과학자와 공상가들을 신봉자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들의 정치이데올로기적 스펙트럼은 매우 넓었다. 하이모더니즘을 등에 업은 우파 성격의 공상적 이상주의의 대표 사례는 나치즘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20세기 하이모더니즘의 총화라고 할 수 있는 대규모 국가 주도 사회공학의 대부분은 좌파적․혁명적 성격이 강한 엘리트의 작품이었다.

여기서 하이모더니즘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하이모더니즘이란 얼추 1830년에서 제1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서유럽과 북미의 산업화를 이념적으로 뒷받침했던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대한 강력한 신념을 일컫는다. 이러한 신념은 직선적인 진보, 생산의 증대, 합리적 사회 설계, 필요의 충족, 인간과 자연 통제에 대한 무한한 확신을 수반했다. 따라서 하이모더니즘은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국가라는 시스템을 통해 인간의 모든 영역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또한 그것이 약속하는 혜택이 그 속에서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차없는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이모더니즘을 단순히 과학의 현실 적용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곤란하다. 하이모더니즘은 과학과 기술의 효용적 정당성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하나의 신념, 곧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하이모더니즘이 인간의 정주(定住)와 모든 형태의 생산을 대상으로 한 포괄적인 계획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그런 면에서 논리적이다.

하이모더니즘의 발흥과 그 거대한 영향력은 ‘항상 변화하는 자연과 인간 환경에 대응해 쌓고 터득해 온 실용적 기술과 지혜’를 가리키는 메티스(metis)를 대체해 나아갔다. 오랜 세월의 체험이 녹아있는 실제적인 노하우를 하찮은 것으로 폄하하거나 심지어 위험천만한 미신으로 폐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배를 몰아본 적 없는 뛰어난 해양학자가 풍부한 '메티스'를 가진 노련한 선장을 내치고 선박의 키를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 주도 사회공학의 제도적 환경이 반복성, 안정성, 예측가능성을 충분히 담보하기만 한다면 일련의 고착된 관행은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인간사에서 그럴 개연성은 희박하다. 메티스를 무시한 관행에 대한 집착은 반생산적이 될 공산이 크다. 치열한 경쟁과 급변하는 경제상황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가족 기업이 흔들림 없이 꾸준한 수익을 내며 오랫동안 존속해 왔던 것은 유연성과 현장성에 기초한 메티스 덕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